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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Read

부의 기원을 읽고

뭐뭐를 읽고 라는 식의 제목을 쓰고 나니 국민학교때 그렇게 쓰기 싫어하던 독서감상문이 생각난다. 원치도 않는 책을 안겨주고 강제로 써내라고 하던 '독서감상문'덕에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글쓰기 자체를 싫어했었다. 선생님들 참고 하시기 바란다.

책을 다 읽고나니 기원보다는 원천이 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과거에 한번 생겨나고 그대로 유지되는 부가 아닌 지금도  계속 생겨 나고 있는데 부의 원천에 대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부의 기원은 전통경제학의 문제점을 짚고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경제를 보는 새로운 틀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새로운 이론을 만든것은 아니고 여러 복잡계 경제학이라고 이름붙일만한 분야의 여러 학자들의 성과를 모아 소개하면서 저자의 통찰도 덧붙이는 정도 되겠다.

어떻게 썼던 간에 그 내용은 내 사고의 근간에 영향을 미칠만한 것으로써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슈거스케이프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모의경제 실험도 인상깊고, 경기 변동의 원인에 대한 부분은 요즘의 경기 부진과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더 관심을 끄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간에 서로 신뢰도가 높은 나라일 수록 잘 사는 나라라는 내용도 참 놀라우면서 무언가의 실마리를 잡은듯한 느낌도 준다.

어릴때 독후감을 쓸때면 쓸것이 없어서 책 내용을 일단 주욱 간추려서 적고나서 내 감상몇마디 써주는 것으로 분량을 채웠었다. '어른'이 된 후에 쓰는 독후감에도 분량을 채우기 위해 책의 내용을 주욱 적고 싶지는 않다.  좀 얇은 책이라면 간단히 그래줄 수도 있으나 본문이 700페이지에 달하고 레퍼런스만 32페이지짜리 '목침'을  다 소개하기에는 내 요약실력도 모자란다.--;

이 책처럼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책은 왠지 통쾌한 기분이 든다. 영화로 치면 악당들을 물리치는 통쾌한 액션물을 보는 기분이랄까 ㅎㅎ 기득권층의 악랄한 행태를 많이 보아온지라 (특히 요즘) 학계에서조차 기존의 학설로 거만하게 자리잡고 새로운 시각을 깔아뭉개는 기득권 학자들도 상당히 마음에 안드는 자들이다. 혁신을 방해하는 아이디어킬러 고위층과도 비슷한 존재라서 더욱 그렇게 생각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잠시 인터넷을 뒤져서 기존경제학자들의 반론같은것이 있나 찾아보았는데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둘이 붙여 놓으면 참 재미있는 싸움판이 될 것 같은데 아쉽다. 맨유 축구경기 보는 기분이 이런걸까? 스포츠경기 관람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

어머니께서 배를 깎아다 주시면서 배추 뿐 아니라 배도 6개에 5천원이라고 한다. 난데 없이 왠 배추에 배 이야기냐하면, 이 책을 읽다보니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경기변동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원인은 수요가 증가할때 그에 맞추려고 너도 나도 생산설비를 확장하나  설비가 완성될때쯤엔 수요가 둔화되고 공급이 넘쳐나서 가격폭락으로 이어지면서 공장 문닫고, 살아남은 공장은 싸게 많이 팔다가 호황되고 ..뭐 그런식으로 오르락 내리락 정신 이상 처자 널뛰기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어제본 뉴스에는 배추가 풍년이라 배추값이 폭락이라 배추를 갈아엎고난리라며 하는 말이 이런 사태가 매년 반복된다고 몇년간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그래프까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럴때 나오는 말 1순위. 달나라에도 가는 인간이 이렇게 밖에 못하나? 뻔한 실수를 매년 반복하다니..  결과만 보면 뻔하나 실제로 방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아까는 어머니께서 3포기에 4,000원 짜리 배추를 사오셔서 가르시면서 이렇게 실한놈이 4천원이라니 하시며 허탈한듯 웃으시는게 아닌가.  그래서 방금전 아고라에도 한 번 이런 이야길 쓰면서 배추값 파동을 막을 대책 아이디어 좀 내보자고 글을 올려봤는데, 영 반응이 없다. 온통 스와핑이야기 뿐이다.--; 예전에 '전기자동차는 사회문제인가 기술문제인가'라는 글로 한번 카테고리 탑을 차지하보고서는 이번에도 기대좀 해보았으나 이번엔 천만에 콩떡이다.

경기파동의 원인이 수요와 공급이 들어맞지 않는 문제 때문이라는 책 내용과 뉴스의 배추값 파동이야기를 보고 뭔가 해결책이 있을 듯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고라에 이야기를 해보자고 올린것이었다. 하지만 스와핑에 홀린 사람들에게 배추는 안중에도 없었다 --;

책 중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하는 말이 근래에는 인터넷등으로 정보의 흐름이 원활해지면서 경기변동폭이 적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말을 보니까 우리도 인터넷을 자알 이용하면 배추 수요와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농사지을때 배추를 심을지 무우를 심을지를 웹사이트에 등록하도록 해서 할당량이 차면 다른 작물을 경작하도록 한다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나이드신 농촌 어르신들에게 는 불가능한 일이니 농촌정보화 마을처럼 정보화관리자 라도 한 명씩 마을에 둔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전체 재배량의 산정이 또 문제일텐데, 소비량 생산량을 중앙집중식으로 맞추려다보니 공산주의 계획경제가 생각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구 소련이나 북한에서 인터넷을 활용할 수는 없었지 않은가? 게다가 그들은 수요를 알아도 생산에 한계가 있어서 그에 맞출수가 없다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재배량은 수요량에 맞는것인데 배추같은 경우는 매년 김장철 수요가 그리 변동이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배추나 쌀같이 수요가 크게 변동하지 않는 상품은 수요예측이 가능하고 또 시스템이 갖춰 진다면 '동네축구식' 재배도 방지 할 수 있을 듯싶은데, 수요를 예측하기 힘든 대부분의 상품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으로서는 별 수 없어 보인다 --;  이 책에도 그런 놀라운 예측법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다만 전통 경제학에서는 완벽한 랜덤워크(지멋대로)라고 간주했던 주가의 변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범위 내의 램덤 워크라는 가정이 틀리고 그 대신 훨씬 큰 진폭이 나타날 수도 있는 카오스진동이어서 전통 경제학의 계산대로라면 나타날 수 없는 변동성이 나타나는 것이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변동성덕분에 우리나라 IMF시절 즈음하여, 노벨경제학상을 타주신 두 분이 근무하신 롱텀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투자회사는 하루 아침에 쫄딱망했다. 그리고 요즘 같은 경제 위기도 전통 경제학으로는 전혀 예측도 설명도 안되는 것이란다.

또 다른 놀라운 내용중의 하나는 사람들간의 신뢰가 높은 사회일 수록 부유하다는 것이다. 기초적인 경제활동인 물물교환을 보면 고기만 가지고 있는 사람과 돌도끼만 가지고 있는 사람 둘이 만나 서로 교환을 하면 둘은 필요한 두 가지를 모두 가지게 되어 한가지씩만 가진 둘 보다 훨씬 좋은 상태가 된다. 

하지만 교환한 고기는 썪은 고기가 아니어야 하고 돌도끼는 금방 깨져버리는 것이 아니어야 서로에게 이익이지, 그렇지 못할때는 문제가 생긴다. 한쪽이 속이고 일부러 썪은 고기를 줬다면 자기는 버릴것을 처리하면서 돌도끼를 얻게되어 더 큰 이익을 얻지만 상대방은 동도끼만 잃는 꼴이 되어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속이는 사람은 그 거래에서는 이익이 더 커지기 때문에 속이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는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속이는 인간이 많아질 수록 거래는 줄어들고 스스로 모든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전문성이 떨어져 생산량이 늘기 어렵고 그러다보니 그 사회 전체가 가난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이치는 모두 알고 있고 인간의 유전자에도 이타적인 유전자와 손해를 볼지라도 공정함을 추구하는 유전자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에 신뢰의 문화가 충만하기에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것 같다.

그러고보니 잘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물론 말로 표현하기에만 간단하다--;   그것을 사회전반에 충만하도록, 그 사회의 문화로 자리잡도록 하려면 굉장히 어려운 것 같다.  일단 정치가들이 청렴해야하겠고, 부자이던 가난하던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갑의 횡포가 없어져야 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없어져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않는가? 우리나라  당장 부자되기 좀 어려워 보인다.--;; 정부마저 부유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아무리 죄를 저질저도 이건희 일가는 그냥 풀려나고, 자기 집 가격 오르기만을 바라고 차떼기 하던 한나라당 뽑아주는 국민이 있으니, 정부와 법률 집행에 청렴과 공정은 여전히 떠올리기 힘든 단어이다.

내가 사업을 한다고 나설때도 가장 처음에 들은 말도 다른 사람 믿지 말아라, 세상엔 온통 도둑놈들이다라는 말이었으니 뭐 우리 사회의 신뢰가 어느정도 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책에 나온 표에 보니 우리나라는 그나마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때 국민들간의 신뢰도가 한 중간 쯤에는 있는 듯 하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나라를 잘 살게 만들기 위해서 무슨일을 해야할지도 분명해진다. 정부는 우선 청렴해야하고, 개인들간의 거래는 공정하도록 해야한다. 공무원의 부정부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체의 번영을 막는 대죄임을 알고 더 크게 다스려야 하며, 개인간의 거래에도 공사 대금을 안주고 뗘먹거나 거래를 빌미로 사기를 치는 경우는 엄벌해야할 것이다. 갑의 횡포를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치도 확실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런 기본적인 사회의 문화를 만들어 놓고 나서 소위 경제문제라는 것들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해야지, 기본적인 사회 구성원 들간의 신뢰문화 구축이 안된 상태에서는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슈거스케이프이야기만 더 하고 마치겠다. 기계류를 좋아하다보니 경제학책에서도 컴퓨터 시뮬레이션 나온 부분이 마냥 신기하고 흥미가 간다. 슈거스케이프는 경제활동을 모델링 해보고자 간단한 규칙을 가진 경제 모의 실험프로그램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슈거스케이프라는 보컬그룹 다음으로 검색된다.

아예 프로그램이 오픈소스화되어 인터넷이 떡하니 올려져 있다. 심시티나 심즈에 비하면 간단하기 짝이 없고 공룡도 안나온다.
그러나 빈부 격차의 원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등 인간이 복잡한 듯하지만 그리 복잡한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 같다. 매우 간단한 규칙을 가지고 돌린 시뮬레이션이 인간사회와 같은 빈부 분포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빨간점은 사람이고 바탕의 노란색은 설탕으로 빨간점 인간들이 먹고 사는 식량이다 노란색이 진할 수록 설탕이 많다. 빨간점은 앞으로 만 볼 수 있고 능력에 따라 몇칸 앞을 볼 수 있는지가 다르다. 한칸안에는 한 사람 밖에 못들어가고 설탕이 있는 칸에 들어가면 설탕을 먹을 수 있다.

빨간점인간은 물질대사량이 각자달라서 먹은걸 금방 소모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 저장할 수 있는 타입도 있다. 물론 소모량보다 많이 먹으면 저장할수도 있다. 그리고 설탕 저장량이 0이 되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망한다. 방향 전환이야기는 안나오는데 아마 랜덤하게 할 수 있는 듯 하다.

그러니까 빨간점인간은 눈이 좋으면 멀리 있는 설탕도 보고 그 쪽으로 갈 수 있고, 대사량이 적을 수록 적게 먹고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실험의 처음에는 빨간점인간을 지도상에 골고루, 능력도 골고루 분포 시켰으나 이내 설탕산을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거기까진 당연한듯 하다. 그런데 실험의 끝에 부의 분포를 그래프로 그려보자 설탕을 270개로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2명이고 그 아래로 구간별로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설탕을 27개 이하로 가진 사람이 122명으로 최대의분포를 보였다. 

이것은 실제 부의 분포와 일치하는 것으로, 파레토의 법칙으로 알고 있듯이 80:20법칙대로 전체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는 분포 양상을 보인것이다. 그러면 부자 빨간점 들은 시각이 좋고 소모율이 낮을까? 아니올시다랜다. 그러면 설탕산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부자인가? 그것도 아니랜다.

책에서는 이렇게 부가 나뉜 이유는 모든 것들의 합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결국 재수라고 생각해도 되는건가? 모든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모든것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까 같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부자집안에서 태어나면 계속 부자일 가능성이 더 높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경우는 가난할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다만, 부는 가진자가 없는자에게서 빼앗은것이라는 좌파적 관점과 없는자는 열등하고 게으를것이라는 우파적 가정은 틀린것이라는 말이다.

나아가 이실험의 조건에 섹스까지 집어 넣자 빈부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고 한다. 그 조건이란건 뭐 부자가 더 번식을 할 가능성이 높도록 한것이다.--;  나로선 우울한 조건이 아닐 수 없으나 사실이 아닌가? 

더 이야기 하자면 오늘내로 끝낼 수가 없을것 같고, 책 말미에 나오는 좌파 우파 구분의 무의미함에 대한 내용도 동감이 간다. 그간 좌우사이에서 혼란스럽던 내 정체성도 그 부분을 읽으면서 정리가 된 듯하다.